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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금요일

내 삶의 예배가 정말 고프다.

개인적으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사43:18,19) 성경말씀을 좋아한다.

마치, 컴퓨터의 리셋버튼을 눌러서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느낌이랄까? 회사를 옮겨서 새로운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자신감도 없어지고 자책하게 되고 한심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하여 자포자기하게 되거나, 놓쳐버린 시간들을 만회하려는 급한 마음에 무리수를 두어 오히려 일이 더 엉망으로 되는 경험들을 많이 해왔다.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때 그것을 하지 말아야 했어. 왜 그랬을까? 그때 그것을 했어야 하는데 왜 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를 반복적으로 해왔다.

그러면서도 기회가 주어지면 똑같이 그 후회되던 행동을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곤 한다.

날마다 잠언의 말씀을 보며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에 대하여 접하고 있는데, 하루를 지내고 보면 늘 어리석은 자의 편에 속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알면서도 못하고 있고 안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교회에서 아닌 내 삶의 현장인 직장에서 맡겨진 일들을 성실히 하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과 물질들을 규모있게 사용하는 것인데 늘 못하고 있다.

내 입의 수려한 말과 글들을 하나님이 보시지 않고, 내 생활의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내 생활을 하나님이 보실텐데, 잘 안된다.

이것만 되면 정말 행복하겠다. 내가 부유해지고 계획하는 모든 일이 잘되는 것보다도, 내 삶의 현장인 직장에서 맡겨진 일들을 성실히 하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과 물질들을 규모있게 사용하는 모습이 나에게서 발견된다면 나는 감격할 것 같다.

교회 예배시간에 드려지는 한정된 예배가 아닌, 내 삶의 예배가 정말 고프다.

[PS. 14.05.16]
설익은 열심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축구에서도 속도도 위치도 맞아야 비로소 패스미스가 없다.
적절한 지점에서 멈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도 지치고 
나아가 팀을 와해시키는 불쏘시개가 된다.
열심을 내려면 언제라도 제 위치에서 멈춰야 한다는 걸 항상 맘에 새겨라.

나는 적절한 지점에서 멈추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그게 참 중요한데, 적정 선을 지키지 못하고 열심을 내지만 
지나고 보면 내가 뭘했나?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많이 하곤 한다.
뭐든지 과유불급인데 나한테는 너무 어렵다. 
열심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정답인데 이걸 못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후회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2014년 5월 1일 목요일

예수님과 통하라(균형잡힌 기독인을 위한 추천 도서)

이번 주에 읽고 있는 책인데, '예수님과 통하라'라는 제목만 보고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따분할 것 같아서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우연히 펼쳐진 한페이지를 읽어보고는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는데 매우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장로교회에 출석하는 장로이시고, 충남대학교 명예 교수이시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였으며 나도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부 내용에 대하여는 나와 견해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최근에 읽었던 책중에 매우 공감되는 책이었다.

균형잡힌 기독인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내 말로 핵심을 정리해본다면 "자신도 모르게 매여있는 것에 매여있지 말고 성경의 취지와 상식에 맞게 신앙과 삶을 영위해라.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다."

아래의 10가지 목차로 책은 전개된다.

1.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그분의 열린 마음을 닮아라

2. 모든 사물에는 양면이 있는 법, 내 생각과 다르다고 배척하지 마라.

3. 인간을 사랑하고 형제와 화목하는 일,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기억하라

4. 세상을 벗어나려 하지 말고,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

5. 교회여! 현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라

6. 목회자여! 권위주의에 빠지지 마라

7.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대신하지 마라

8. 내 뜻을 이루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라

9.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준비하라

10.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독서 능력을 키워라





2014년 4월 26일 토요일

내가 주일마다 교회 주방 냉장고를 여는 이유

[내가 주일마다 교회 주방 냉장고를 여는 이유]

약 5년전 어느날, 그보다 더 이전 일 수도 있는데 기억이 가물하다.

"집사님, 찬양팀들 찬양하려면 목아프고 그럴텐데, 마실걸로 뭘 사주면 좋을까? 내가 매주일마다 준비할께~"

어떤 성도님께서 물어오셨다.

내 머리속으로 빨리 생각했다. '10명이 넘는 많은 인원인데 가장 저렴한 것이 뭐가 있지?'

때마침 생각난 것이 '야쿠르트'였는데, 내 생각에는 가장 작아서 가격이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내가 몰라서 그렇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야쿠르트'가 결코 내 생각처럼 저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하튼,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성도님은 매주일마다 찬양팀에게 한주도 거르지 않고 '야쿠르트'를 제공하셨다.

그리고, 시원하게 제공하시기 위해 매주일마다 교회 주방 냉장고에 그 야쿠르트를 넣어놓으신다.

작년까지는 찬양팀 C집사님이 당번처럼 냉장고에서 챙기곤 했는데, 작년부터는 내가 당번이 되어 주방 냉장고에서 챙겨오곤 한다.

5년에 걸친 '야쿠르트의 섬김과 헌신'.. 금액적으로도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고, 매주마다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섬김과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찬양팀은 그런 소중한 섬김과 헌신의 '아쿠르트'를 마시면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대로 분명히 그 성도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찬양 사역자'의 상급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주일 오후 찬양예배는 매주일 오후 1시45분부터 2시15분까지 30분에 걸쳐 은혜로운 찬양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 있고, 바로 이어 기도와, 목사님의 말씀선포를 포함하여 3시에 마친다.

찬양 인도자로 앞에 서는 입장이지만, 오후 예배에 참여하는 분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다.

나는 언제쯤 저분들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믿음의 사람'이 될까하고 늘 나 자신을 점검하게 된다.

오후 예배는 청년예배와 같은 시간에 드리기 때문에 오후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의 대다수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며, 3,40대는 적은 편이다.

나는 오후예배를 시작하기전, 여러가지 일로 분주하기 때문에 본당까지 연결된 계단을 쏜살같이 오르락 내리락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계단 난간을 붙잡고 한계단 한계단 올라오시는 노년의 성도님들의 옆을 지나쳐 가곤한다.

그때마다 정말 존경스럽다. 노구의 몸으로 계단을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 노년의 성도님께서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실때 이미 그분의 예배를 받으셨으리라는 마음이 이 글을 적으면서 든다.

나는 오후예배 찬양인도자가 아니었다면 우리 교회 오후예배에 아마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사하다. 오후 예배 찬양팀을 하고 있는 덕에 오후예배를 하나님께 빠지지 않고 드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예배를 준비하는 찬양팀도 아닌데 오후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는 분들을 보면,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고개가 절로 수그러진다.

이 글을 적으면서, 하나님께서 오후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덤으로 떠 얹어져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그 예배에 참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결코 화려하지 않으나 마음을 드리는 오후예배를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오후예배 찬양팀은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오후예배를 섬길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실때까지 찬양팀에게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예배와 찬양의 소임을 감당하고자 한다.

찬양팀은 늘 기도한다. 오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가 흘러갈 수 있게 해달라고, 먼저 찬양팀 한 사람 한사람이 예배자로 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이 예배에 참석한 성도님과 우리 교회와 우리 나라가운데 이 세계가운데 흘러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의 잠언 레마 정리

중학교 1학년때, 2년 차이나는 교회누나가 '잠언'을 읽어보라고 해서 잠언을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어릴적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그전까지는 '잠언'이 나에게 인식되지 않았었다.

요즘은 매일 잠언을 아침에 또는 출근길에 한장씩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묵상한다.

31장까지 있으니 매달 반복하게 되는 것인데 그때마다 '레마'로 다가 오는 구절이 다르다.

그동안 즐겨찾기 해놓은 '나의 잠언 레마' 를 정리해보았다.(14.04.26)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잠 1:2)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2:6)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잠2:7)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2:8)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잠2:10)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잠2:11)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3:3,4)

너는 마음을 다하고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 지어다(잠3:7)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잠3:26)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잠4:18)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잠4:24)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떠나게 하라(잠4:27)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잠5:21)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잠5: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잠9:12)

여호와께서는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리라(잠10:3)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리나(잠10: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잠10:14)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잠10:15)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리(잠10:22)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리라(잠10:24)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10:25)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안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잠10:27)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잠10:32)



2014년 4월 24일 목요일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기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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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구글검색)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기에 기도한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산업이 되도록 기도한다.
그리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
이제껏 그렇게 못해왔기에 지금부터 그렇게 하기로 한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최고의 일이 되도록 최선을 다한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위대한 산업이 될 것이기에,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최선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반드시 올 것을 믿기에,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현재 모습을 아끼고 사랑한다.
(글작성 13.10.22  http://wp.me/p37Uxo-tf)


죽을 것 같아도 찍어버리고 끊어내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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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을 대할때마다 왜 이렇게 잔인하고 오버적인 말씀을 했을까? 생각하곤했는데 이제서야 이 말씀의 의미가 깊숙히 쑥 들어온다.
틀린 말씀이 아니다. 정말 100% 맞는 말씀이다. 죽을 것 같아도 찍어버리고 끊어내야 살 수 있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는지 공감이 간다. 내가 전적으로 적용할 말씀이다. 내가 살기 위해, 새로운 미래를 위해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글작성 13년 10월 29일 http://wp.me/p37Uxo-uk)


눈앞에 보이는 일들로 인해 분노를 느끼고 걱정하고 화내고 서로 싸우는데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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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 23:27,28]
교회를 향해 운전하고 오면서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길에서 그분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들에게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인들은 그들의 눈앞에서 죽음을 향해 걷고 있는 예수님을 보고 있었고 그분의 죽음을 슬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들에게 장차 예루살렘성이 당한 고통을 위해 울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에 거하는 사람들이 머지않아 로마군에게 의해 폐허가 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성은 로마군에게 약탈을 당하게 되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운전하고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들로 인해 분노를 느끼고 걱정하고 화내고 서로 싸우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정작 다가올 바로 앞의 일들이나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는 분노도, 화도, 싸움도, 걱정도 전혀 하고 있지 않구나.
정작 슬퍼할 것을 슬퍼하고, 정작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지 못하고, 정작 기도해야 할것에 기도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정작 우리가 지금 힘써야 할 것들을 보여주시고
그 일들을 감당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었으면 합니다.
(13.11.10 글작성. http://wp.me/p37Uxo-vu)


안되는 것을 안된다고 불평하지 말고

[안되는 것을 안된다고 불평하지 말고] 2014.04.23 #06
오늘 '안되는 것을 안된다고 불평하지 말고'라는 검색어로 구글에서 검색했다가,
읽게된 2009년 블로그 글인데, 제가 평소 고민하던 부분에 대하여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이 글들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공감도 하고, 반성도 하고, 위로도 얻었습니다. 
이 3가지의 글만을 읽었을 뿐이고, 시간상 글을 쓴 사람의 전체적인 신앙을 면밀히 검토할 시간을 없었음을 밝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내 계획대로 안되는 사람이다. http://www.pressblog.co.kr/linkblog/101984
개독교의 말... 기독교의 말 http://odydy311.tistory.com/450
교회안에서 사탄을 말하는 자 http://odydy311.tistory.com/700


나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


[나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 2014.04.22 #05
16년전의 일이지만 떠올릴때마다 낯 뜨거운 기억이 있다.
98년 청년회장시절에 청년부의 활성화를 위해 주일에 청년들이 마땅히 있을 장소가 없어 언제라도 와서 교제하고 쉴 수 있도록 교회의 사용하지 않던 한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탁자와 소파를 가져다가 청년부 전용 공간을 꾸며놓았다.
그날은 아마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중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내가 그 날을 기억하는 것은 내 마음에 꺼려지는 것이 있어 스스로 성찬의식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1시 예배전, 나부터 모범을 보이기 위해 청년부의 전용공간에 가있었다. 나 혼자 있었고 아마도 성경을 읽고 있었거나 졸고 있었을 것 같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초등부 선생님이 분반공부를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셨다.
98년도에는 초등부 예배를 마친 후 본당의 곳곳에서 무리를 지어 분반공부를 진행하곤 했었는데,
새로운 공간이 생겼으니 여기를 생각하고 온 것은 당연한 일일 수 도 있다.
그런데 나의 마음에는 순간적으로 위기감이 느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물러나면 청년들이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전용공간을 마련한 의미가 와해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다.
그래서, 나는 그 선생님께 이 공간은 청년부가 사용하기 위해 마련된 전용공간이니 이 곳을 내줄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 선생님은 무척이나 당황했을 것이다. 넓은 공간에 한명의 청년이 있는데, 그것도 특별히 어떤 모임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이들을 우루루 데리고 왔는데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으니 참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나의 기억이 희미하여 그때 내가 그 공간에서 계속 버텨서 그 선생님과 학생들이 다른 곳으로 갔는지, 내가 그 장소를 분반공부를 위해 내어 주었는지 잘 나지 않는다.
1시간 후면 11시 예배였는데 나는 마음의 평정심이 깨져서 결국 그날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를 건너뛸 수 밖에 없었다.
청년부의 전용공간으로 사용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일지라도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왔기 때문에 일단 그날은 분반모임에 사용하도록 하고,나중에 별도로 그 선생님과 만나서 청년부 전용공간 사용에 대한 협의와 양해를 구했으면 참 지혜로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물러나면 안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혜롭지 못한 열심이 나로 하여금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하였다.
이 일은 그 이후 나로하여금 부끄러운 마음과 겸허해질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기억이 되고 있다.
그 때 그 선생님은 아직도 우리 교회에 계신다. 또한 여전히 그 선생님을 볼때마다 부끄러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떠올리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는 것을 매우 잘한다. 눈에 보인다. 왜냐하면 매우 높은 행동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직도 나는 예배시간에 다른 사람들의 예배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많다.
나의 견지에서는 '명색이 하나님 앞에 시간인데 어떻게 저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지?'라는 그런 생각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면 내 마음이 강퍅해진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설교하는 분에게 시야를 좁혀버리거나 눈을 감는다.
그것이 나의 작은 믿음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학생들의 예배에 대한 태도들을 보면서도 유사한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때 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또는 그들의 모습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통해,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타인의 모습에 대하여 비판적인 모습을 하면서, 나 또한 다른 영역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대놓고 이러쿵 저러쿵 말을 못한다. 그게 내 모습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모습에 대하여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 저러면 안되지.'라고 용감하고 정의롭게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그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내 모습이니까.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약간의 형태는 다르지만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그 사람의 위치에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그를 있는 모습대로 보고, 나의 할 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정리하곤 한다.
내 스스로 그 사람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옳고 그름을 떠나 내 마음이 먼저 깨지고 내 안에 은혜가 차지 않고 다른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는 나를 통해 하나님의 평안함도, 능력도, 사랑도 그 어떤 것도 흘러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작 내가 해야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비판하느라 나의 마음을 깨고 남의 마음을 깨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도 아니고 맡겨주신 소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험상 정의로와지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려면 할 수록 작은 것에도 나의 마음은 강퍅해졌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대로 일이 진행되면 본전이지만 내가 생각하던 대로 내가 원하던 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이 나에게 올무가 되고 걸림돌이 되어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했다. 내 스스로 나를 넘어뜨린 형국이 된 것이다.
이런 사람이나 저런 사람이나 그들을 보면서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나의 행동방식들을 점검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매우 원망스러울 때도 있고, 뭔가 내가 원하는대로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하는 나만의 바램이나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이 나를 잠잠하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력이나 지적인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예전에 행하던 못된 행동들이나 어리석은 행동들을 반복해서 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경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지고 믿어진다는 것이다.
평안할 때는 성경과 신앙을 이론적으로만 익히던 것을 이제는 삶에서 적용하면서 확인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배운 것을 시험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까 맘에 받아들여지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고 더 가깝게 다가온다.
힘든 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더 가까이 옴을 느낀다. 그래도, '결론은 버킹검'이라고 나는 평안한 것이 좋다. 
'굳이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나?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곤 했었지만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남들은 다들 하고 있던 신앙의 기본적인 것들을 나는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간다. 그럼에도 그동안 마음속으로 잘난 체 하고 끈임없이 비판하고 그러던 모습이 부끄러울 뿐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을 때마다 부끄러워 할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이다. 나는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어리석은 일과 미련한 일을 할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을 덮으시고 해결하여주시는 예수님이 있으시기 때문에 너무도 다행스럽게 감사한 일이다. 
이것이 내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것을 얼마전에 마음에 깨달았다.
사람들을 보며 나 자신을 보며 예수님이 필요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비난과 죄악과 후회가 더욱 거세질수록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영역에서 맡겨주신 것을 성실하고 겸허하게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이것이 나에게는 숙제이다.
이 숙제가 나를 누르기도 하지만 겸허해 질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그래서 이 말을 하면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늘 핀잔을 난을 받곤 하지만 '나는 오늘 부터 새롭게 시작할 거야'라는 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인간의 지혜로움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박다

[인간의 지혜로움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박다] 2014.04.15

출근 길에 마태복음 26장에서 28장 말씀을 스마트폰 오디오 성경으로  들었다.
마태복음 25장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각종 비유의 가르침을 주신후
26장부터는 유월절과 관련하여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릴 것과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과, 그 과정가운데 자신의 제자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과,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3번 부인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성만찬을 하시면서 예수님과 살과 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가바야 대제사장 뜰에서 재판과 수모를 받으시고
이어 로마총독 빌라도에 의해 사형에 넘겨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가야바 법정에서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이 예수님께 한 언사와 행동들,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던 군중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 조롱하던 제사장들과 무리들을 보며,
나는 한가지 교훈을 얻었다.
지혜로운 인간의 그 지혜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그 지혜가 예수님을 조롱하고 죽였구나.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러지 못했을텐데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고, 알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런 무자비한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그 모든 일에 대하여 대응하시는 예수님의 태도는 매우 반대적인 입장이다.
내게는 이런 상황들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들이 있지만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성경에 미리 일어날 것이라고 기록된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면서
여러가지 선택중에 성경을 이루게 하기 위한 선택을 하셨다.
즉,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선택과 대응을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선택은 현대의 우리가 따라야 하는 선택의 예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한가지 위안되는 것이 있었다.
예수님이 운명하신 후 성소 휘장이 갈라지고, 지진이 일어나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본 백부장과 사람들이 두려워서 '이 사람은 진짜로 하나님의 아들었구나'하는 고백을 하게 된다.
경이로운 현상을 경험한 후의 두려움에 의한 고백이지만, 뒤늦게라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나보구나 하는 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헛소문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매우 현실적이고 지혜롭다고 생각되는 주도면밀한 대책을 세우고,
예수님의 부활이 진짜 일어난 후에도 그것을 감추기 위해 부활의 사실을 속이고 후속대안을 세우는 모습을 통해
이제는 무지를 넘어서 사실을 부인하고 진리를 왜곡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의 지혜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기꺼히 못박히는 선택을 하는 상반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후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재현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못박는 사람들의 행동을 할 것인지 못박히는 선택을 할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어렵지만 나는 못박히는 선택을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의 지혜로움을 매순간마다 버려야 할 것이다.



나는 언제쯤 자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나?

[나는 언제쯤 자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나?] 2014.04.11
특별새벽기도회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번주 월요일 처음 새벽예배에 나와서 오늘까지 4회를 참석하였습니다.
첫날 불렀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찬양을 하는데 정말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내 마음에 어려움이 있을때'라는 가사로 시작하지만, 내 마음에 어려움이 있어서 눈물은 흘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가 맘에 왔습니다.
저로서는 첫날 참석했는데,
왜 그렇게 나의 못난 부분과 모난 부분과 왜곡된 부분과 교만한 부분들이 많이 느껴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선대하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너무도 크게 다가와서
저도 모르게 많은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예배전 찬양에 참석하고 싶어서 외곽순환고속도로를 아주 빠른 속도로 오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일어나면 여유있게 올터인데 그건 힘듭니다.^^
그래도 몇곡의 찬양을 하면서 곡에 사용된 가사 하나 하나가 마음에 깊이 다가옵니다.
이 찬양이 이런 의미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목사님의 말씀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노트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맘으로 새벽예배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난 주일날 아침에 교회에 오자마자 집회실 벽에 붙어있는 새벽예배 출석표를 봤는데
최종 인원수가 예년에 비하여 적은 것 같아서, 나라도 그 숫자를 늘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마음으로 참석하였는데도 엄청난 은혜와 깨달음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잘 참석했구나 하는 것을 매번 느낍니다. 이 성경구절에 이런 내용이 있었구나.
또한 설교 말씀과 찬양의 가사 하나 하나가 또 새롭게 매칭되면서 은혜롭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책임감이나 마음에 부담감이 아닌
은혜를 사모하는 맘으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볼 수 있을까?
그런 성숙하고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마다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은 정말 마음이 대단히 넓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배려하심에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맘으로는 진짜 많은 분들이 새벽 예배에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은혜의 시간들을 더욱 많은 분들과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이 새벽마다 들었습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은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기만 합니다.
새벽예배를 위해 수고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저를 잘압니다. 회사에서 퇴근시간도 늦고, 저질 체력이고 게을러서 평소같으면 새벽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특별 새벽예배기간이 아니면 우리 교회에 오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참석하는 한번의 시간이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몇번을 참석할 수 있든지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길 소망합니다.


I don't know about tomorrow

[ I don't know about tomorrow] 2014.04.01 
우리 나라에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로 알려진 곡입니다.
영어의 원곡의 가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곡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미래를 붙잡고 계시는 분이 누군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내손을 잡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그분과 함께 살아가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알기 때문에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아요."
라는 신앙고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중국어 버전은 영어 원곡의 1절과 동일한 내용인데 부르는 분과 선율에 또 다른 은혜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많은 힘이 되었고 스마트폰에 저장해놓고 계속 듣고 있습니다.

 유튜브 영어버전1 http://www.youtube.com/watch?v=2n3iLXHzX9k 
 유튜브  중국어버전 http://youtu.be/a82Oj2H2YTU 
 유튜브 영어버전2 http://www.youtube.com/watch?v=OKHZRMN1E0M 
1. I don't know about tomorrow,
    I just live from day to day.
    I don't borrow from it's sunshine,
    For it's skies may turn to gray.
    I don't worry o'er the future,
    For I know what Jesus said,
    And today I'll walk beside Him,
    For He knows what is ahead.
    [Chorus]
    Many things about tomorrow,
    I don't seem to understand;
    But I know Who holds tomorrow,
    And I know Who holds my hand.
    Ev'ry step is getting brighter,
    As the golden stairs I climb;
2. Ev'ry burden's getting lighter;
    Ev'ry cloud is silver lined.
    There the sun is always shining,
    There no tear will dim the eyes,
    At the ending of the rainbow,
    Where the mountains touch the sky.
3. I don't know about tomorrow,
    It may bring me poverty;
    But the One Who feeds the sparrow,
    Is the One Who stands by me.
    And the path that be my portion,
    May be through the flame or flood,
    But His presence goes before me,
    And I'm covered with His blood.
[한글 번역]
 1. 내일에 대해서는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내일의 햇빛으로 부터 빌려 살지 않아요
     그러면 내일의 하늘이 회색으로 될 수 있으니까요.
     내일에 대해서는 걱정 안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난 오늘 그 분 옆에서 걸을 것입니다
     그분은 앞길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후렴]
   내일에 관한 많은 것을
   난 이해 할 수 없는 듯 하지만
   누가 내일을 잡고 계신지 나는 알고
   누가 내 손을 잡고 계신지 나는 알아요.
  2. 금색 계단을 내가 밟아가는
      한 걸음 마다 더 밝아집니다.
      모든 짐이 더 가벼워집니다
      모든 구름 밑에 은색 빛이 띕니다 (불행 중 행운이 있다는 그런 표현)
     그곳에는 해가 항상 비췹니다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그곳에는 눈물이 전혀 눈을 어둡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지개의 끝에서
     산이 하늘을 만나는 그 곳에서
  3. 내일에 대해서 나는 몰라요
      가난을 갖고 올 수도 있어요.
      그러나 참새를 먹이시는 그 분이
      내 곁에 서 계십니다.
      나의 몫이 되는 이 길
      불이나 홍수 가운데라도
      그 분의 임재가 내 앞에 가시고
      나는 그분의 피로 덮혀 있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이 오늘도 나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이 오늘도 나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다.] 14.01.16

2014년 새해가 되면서 의미있는 변화들이 내외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선, 설교 말씀을 노트하면서 듣고 있는데 말씀이 매우 깊이 개인적으로 다가옴을 느끼고 있습니다.
적어 놓고 쳐다 보지도 않는데 뭐하러 애써 노트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몇년동안 노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어떤 분의 조언에 따라 우선적으로 졸음을 떨치기 위해 노트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노트를 하는 중간에도 설교자가 방금 말한 단어도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곤 합니다.

내 자신의 삶에 대하여도 반성도 하고 희망도 생겼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나 자신의 나태함에 대하여 반성하고 희망도 생겼습니다.

계속적으로 약한 자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소속된 남전도회 회원들의 말과 행동에서도 보여지고 있어 놀랍기만 합니다.
찬양팀에서도, 섬기고 있는 중고등부 교사중에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고 있어 놀랍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들에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대견스럽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내심 나는 겸손한 사람이야 하는 생각이 일부 있었는데,
나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며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깨닫게 되어 스스로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은연중에 속으로 손가락질하던 이들의 모습을 내가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떠들어 냈던 내 말들도 믿음없는 너무도 부끄러운 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내에서도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사회 생활에서 성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4년에는 열심히 제대로 믿어보겠노라 고백하며 실행하고 있는 두 가정의 모습이 저에게 큰 위로와 희망과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이 되고 보는 것 만으로도 기쁨이었던 지체들이 없어진 빈자리에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통해 더 큰 기쁨으로 채워지고 있어 놀랍기만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어서 매우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구나 하는 것을 조금씩 마음에 인정하게 됩니다.

부끄럽지만, 새벽기도도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떻든 새벽기도가 다시 시작되어 참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내가 목소리를 높여 말할 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가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무릎꿇고 순종하고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맡겨진 것을 감수하는 것이 오직 내가 할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시고, 그래서 감사하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신앙안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믿음으로 바로 서고 결실로 설수 있는 2014년 한해가 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이 오늘도 나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다.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좋은 곳

어찌 어찌하다보면 새벽예배 시간에 맞춰 가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도 예배당에 나가 늘 무릎꿇던 곳에 무릎을 꿇면 유익함이 많다

그날 목사님의 말씀은 놓친 것이 아쉽지만

그곳에 나가 무릎을 꿇면 마음이 새로와진다

오랜만에 무릎을 꿇는 것을 다시 찾았다

어느 순간 잃어버리니 언제라도 다시 찾을 것 같았지만 그게 안되었다

어렵게 다시 찾은 만큼 다시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면 들뜨지 않고 새로와지는 것을 느낀다

또한 실망했더라도 다시 겸허함으로 회복됨을 느낀다

2012년 5월 18일 금요일

그 어느 것들보다 내가 주님의 길에 서 있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가 현재 절실하게 느껴지는 어떠한 기도제목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필요함을 오늘 새벽에 깨닫게 되었다.

재정적인 사안들..처리해야할 업무들..

진행해야할 일들...자녀의 진로와 양육의 사안들...

다 급하게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 어느 것들보다 내가 주님의 길에 서 있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중요함을 다시금 인식한다.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하나에 매이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면??

하나에 매이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반면, 하나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것에 매일 수 있다.
과연 어떤 선택이 진정한 자유로움일까??
나는 하나님께 매이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선택한다.
그대는??

2012년 5월 3일 목요일

나의 말로 받아들인 오늘의 잠언 (잠언 3장)

3.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을려면 '인자'와' 진리'가 꼭 있어야 한다.

5. 내가 명철해봐야 보잘 것 없다.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마음을 다해서 하자.

6.고집대로 뻐티고 나가지 마라. 모든 상황과 경우에 하나님의 손길과 기획을 인정해야만 하나님이 나의 길을 지도하실 수 있다.

7.어떤 경우에도 악으로부터 떠나라(멀어져라. 피하라. 폭탄피하듯. 쓰나미로부터 멀어지듯,뱀으로부터 멀어지듯).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 마라.

9,10.풍성해지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그 분야의 시작을 하나님을 위해서 써라(일을 진행해라.할당해라.최우선적으로)

21.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항상 지켜라. 눈뜨면 보이는 것 처럼

22. 목에 장식품은 목걸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는 것이다.

23. 생애를 평안이 살아갈 수 있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있고, 걱정에 잠못이룰 일 없고 단잠을 잘 수 있으려면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항상 지켜라.

26.하나님을 의지하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주신다. 의지한다는 것은 그 분의 방침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35.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다.

36.지혜로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광은 그 사람에게 걸맞아 가치가 있지만, 미련한 사람에게 영예가 주어지는 것은 오히려 망신거리와 수치가 될 수 있다.

2012년 5월 1일 화요일

(신앙의 글들) 내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잃은 후에야 깨닫은 예배의 중요성

신앙의 트윗 모음들

당연 내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잃은 후에야 그동안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당연 놓아버렸던 새벽예배와 공예배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제는 그 어느 것에도 그 귀중한 시간을 바꾸거나 빼앗기지 않고 그 시간을 얻기 위해 범사에 더 집중하여 살아갈 것이다

시92:4,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전라도버전:아따 속시원해부러 요로코롬 일을행하셨다요)

넘버원(No.1)은 남과 비교해서 나온 결과이지만 온리 원(Only One)은 남과 비교할 수 없어 더욱 귀중하다는 사실도 가르쳐주자. -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50

하나님이 우리를 왜, 무슨 목적으로 지으셨는지를 잘 깨닫지 못하면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된다. 하나님이 찻잔으로 만들어 놓으신 자가 꽃병으로 만들어진 자를 비교하며 속을 끓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8

'오늘 또 야근? 도대체 사람 취급을 하는 거야 뭐야?(앗 이게 아니지.)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직장이 아직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감사합니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3

'저 동료는 왜 이렇게 나늘 못살게 구는 거지?(앗 이게 아니지.) 아..저런 사람과 한 집에 사는 사람도 있는데...그래도 나는 화사에서만 만나니 참 다행이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3

불평할 일이 없을 수 는 없겠지만 그 불평을 감사로 바꾸어보도록 하자. 무의식중에 불평이 나왔다면 얼른 거기에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면서 반전의 말을 덧붙여 감사의 말로 바꾸어 보자-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3

똑같은 상황에서 불평하는 사람과 오히려 감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불평이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당신에게 달려있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2

하루 종일 많은 불평을 쏟아내보았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출근길은 남마다 막히고 부장님은 늘 그대로 그 자리에서 나를 괴롭히고.. 나의 불평이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2

홍해를 갈라주시고,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시고, 광야에 메추라기와 만나로 주린 배를 채워주시고, 돌에서 물이 솟아나게 해주신 여호와께서도 참다못해 선언을 하시기에 이르렀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신은경의<홀리스피치>

또 한가지, 우리가 귀 기울여할 할 하나님의 말씀은 섭리적 역사를 통하여도 세밀하게 들려온다. 존 오웬은 섭리적인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우리의 영의 생각이 개발된다고 주장한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36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한 치도 틀림이 없으며 모든 말씀이 진리이므로, 달콤한 말뿐 아니라 주님의 징계의 말씀, 경책까지도 겸허히 들어야 할 것이다. -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35

제1일:말하기의 기본은 듣기다. 제2일:공감하면 상대가 들린다. 제3일:듣기의 기본은 하나님의 말씀듣기다. - 신은경의 <홀리 스피치>에서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언25:28)

환난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잠언25:19)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잠언25:16)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잠언25:15)

근처교회들을 마다하고 약간 먼곳을 다니시는 약사님 한분은 약국을 들른 부목사님이 '주보한장'을 주고 가셨는데 한달후 이사와서 교회를 찾는중에 택시에게 길안내부탁하고 자신의 차로 따라 처음 찾아갔단다. 7년전일이며 돌아보니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단다.

첫째,잠시 멈추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 '지금 저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헤아려본다. 둘째,저 사람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까' 생각해본다. 셋째,성령님의 도움으로 '상대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한다.- 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28

공감이나 배려는 나의 마음이 넉넉할때 가능하다. 나 자신이 고단하고 메마르면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고 오해하기 쉽다. 나 자신이 먼저 자존감을 갖고 큰 그릇이 되면 상대를 넉넉히 수용할 수 있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28

너는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언24:29)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잠언24:26)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언24:19,20)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4:13,14)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24:5,6)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잠언24:1)

2012년 4월 29일 일요일

감아서 먹을 수 있는 크기인지 재고 있는 보아뱀 & 죄의 무서움

개나 고양이라면 몰라도 뱀을, 그것도 커다란 뱀을 집안에서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렵지요. 하지만 꽤 많은 북미주 사람들이 그런 이상한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동남아로부터 많은 대형 뱀들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현재 플로리다 남부 에버글레이즈 지역에는 애완동물로 수입되었다가 탈출한 비단구렁이만도 1만-10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래서 큰 뱀과 관련된 얘기가 심심찮게 뉴스에 보도됩니다.

수년 전 미국 플로리다주 중부에 있는 옥스퍼드시에서 일어났던 비단구렁이(Burmese python) 사건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32세의 찰스(Charles Jason Darnell)는 길이 2.6m의 비단구렁이와 1.8m의 보아뱀을 집 안에서 기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찰스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먹이를 주러 갔다가 비단구렁이가 우리 속에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혹시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그는 함께 살던 제이런(Jaren Ashley Hare, 23세)의 두 살 난 딸 샤이우나(Shaiunna Hare)의 방으로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렁이는 침대 위에서 샤이우나를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기겁을 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풀려고 노력했지만 구렁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찰스가 칼로 마구 찌르자 그제야 구렁이는 피를 흘리며 감았던 아이의 몸을 풀고는 옷장 밑으로 스르르 사라져버렸습니다.

찰스는 곧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불과 7분 후에 출동했으나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안타깝게도 이미 샤이우나는 숨을 거둔 후였습니다! 샤이우나의 몸에는 심하게 감긴 흔적과 더불어 머리 부분에 뱀이 물어뜯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두 살 여자 아이를 질식사 시킨 비단 구렁이 근래에 뱀과 관련하여 소름 끼치는 또 다른 얘기를 들었습니다.

캐나다 동부에 보아뱀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뱀이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우리를 만들지 않고 그냥 집안 땅 바닥에 기어 다니게 하면서 길렀는데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 뱀은 점점 자라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뱀이 그 집의 열 살 난 딸의 방에 들어가서 침대 옆에서 마치 죽은 듯이 몸을 쭉 펴고 누워 있곤 하더랍니다. 보아뱀이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자 아이는 처음에는 그냥 방 밖으로 내쫓았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뱀은 아이의 침대 옆에서 길게 누워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 아버지는 혹 뱀에게 무슨 이상이 생겼는가 싶어서 수의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수의사는 질겁을 하면서 당장 뱀을 죽이라고 했답니다. 뱀이 딸 옆에 몸을 펴고 누워있는 것은 자기가 감아서 먹을 수 있는 크기인지를 재고 있는 것이라나요! 무시무시한 얘기지요.

실제로 미국 정부(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 통계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한 사건을 포함하여 1980년 이래 적어도 12명이 집에서 기르는 비단구렁이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그 중 5명은 어린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해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구렁이가 점점 자라면서 어느 순간 사람을 칭칭 감아서 질식시킬 수 있는 크기가 되는 것입니다.

구렁이 얘기는 우리로 하여금 죄의 특성을 생각나게 합니다. 죄는 작을 때는 우리의 삶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정도의 탐욕, 거짓말, 음란, 시기, 질투, 교만, 도적질 등등... 그 정도의 죄라면 QT를 하면서도, 교회에 다니면서도, 집사나 장로, 성가대를 하면서도, 심지어 목회를 하면서도 큰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죄는 무생물이 아니라 구렁이처럼 점점 자라는 생물적 특성이 있습니다. 죄가 어느 정도 자라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얼핏 얼핏 드러날 정도가 되면 우리의 영적 생명은 천길 만길 절벽 위에서 눈을 감고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위험천만한 상태가 됩니다.

죄가 우리를 완전히 파멸시키기 위해 옆에서 길이를 재고 있는 단계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어느 캄캄한 밤중에 죄의 구렁이는 우리를 칭칭 감아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절벽 아래로 추락하게 만들 것입니다.

근래 교계 몇몇 지도자들이 어이없는 일로 실족하는 것을 보면서 구렁이와 같은 죄의 특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그들도 죄가 그렇게까지 위험스러운 존재인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죄가 자라면서 우리의 영적 감각을 그렇게까지 무디게 만들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구렁이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품고 있는 죄의 구렁이는 없는지, 내가 몰래 키우고 있는 구렁이는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죄는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니까요.

양승훈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  ⓒ 미주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