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4일 목요일

좋은 곳

어찌 어찌하다보면 새벽예배 시간에 맞춰 가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도 예배당에 나가 늘 무릎꿇던 곳에 무릎을 꿇면 유익함이 많다

그날 목사님의 말씀은 놓친 것이 아쉽지만

그곳에 나가 무릎을 꿇면 마음이 새로와진다

오랜만에 무릎을 꿇는 것을 다시 찾았다

어느 순간 잃어버리니 언제라도 다시 찾을 것 같았지만 그게 안되었다

어렵게 다시 찾은 만큼 다시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면 들뜨지 않고 새로와지는 것을 느낀다

또한 실망했더라도 다시 겸허함으로 회복됨을 느낀다

2012년 5월 18일 금요일

그 어느 것들보다 내가 주님의 길에 서 있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가 현재 절실하게 느껴지는 어떠한 기도제목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필요함을 오늘 새벽에 깨닫게 되었다.

재정적인 사안들..처리해야할 업무들..

진행해야할 일들...자녀의 진로와 양육의 사안들...

다 급하게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 어느 것들보다 내가 주님의 길에 서 있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중요함을 다시금 인식한다.

2012년 5월 17일 목요일

문자에 대한 반응을 통해 상대방과 나의 관계지수가 자연스레 현실점검된다

개인적으로 부탁할 사항이 있어서 여러 지인들에게 문자도 보내고 메일도 보낸 적이 있다.

함께 우려해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노라는 문자를 보내오신 분들도 있었다.

전화번호가 변경되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전화번호가 변경되었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이참에 전화번호를 삭제해버렸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고마움과 감동이 있다.

2명의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소개받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성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기 적절한 그들의 대응과 귀한 손길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한 분은 해외출장중에 있었는데 ‘필요한 자료들을 보내면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해보겠노라’는 답신을 즉시로 보내왔다.

그것도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 말이다. 즉시, 그 분께 필요한 자료를 발송하였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보낸 문자들이나 메일들이 아닌 전혀 생각지 못한 다른 방법을 통해 일이 매듭지어졌다.

그렇지만, 일련의 일들은 나의 네트워크를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긍정적인 격려의 필요성에 대하여

고등학교 1학년때 수학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입을 가리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하품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그렇게 하품을 하면 하품(下品)이 된다고 친절하게 칠판에 써주셨다.

자주 듣다가 보니 나도 그 말에 세뇌가 되었는데, 26년이 지난 지금도 보니 그렇게 하품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라리 그때 그 선생님이 그렇게 하품하는 학생들은 당연히 피곤한 학생들이었을 테니, ‘피곤한 와중에도 수업을 듣느라 수고가 많구나’라는 말을 해주었다면 나도 그런식으로 사람들을 대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오늘 아침에 문득 들었다.

물론, 그때 그 선생님은 학생들이 예절바른 학생이 되길 바라셨겠지…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런 예절 보다는 드러난 현상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능력이 있어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부터라도 그 선생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하품하는 사람들을 격려해주어야 겠다.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고 내려놓으라

나의 노력을 내려놓는 것 이것만이 나의 살길이다.
될 것 같아도 내가 하면 될 것 같아도 내려놓아라
그 분께 손을 벌려라. 그 분의 지혜를 구하라
그것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열린 것 같아도 막힌 길이 있고
막힌 것 같아도 열린 길이 있다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내려놓으라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고 내려놓으라
멈추라 어렵더라도 멈추라
그리고 비로소 움직여야 할때 그때 움직여라
그때까지는 멈춰 있어라

네잎 클로버 그리고 세잎 클로버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하고 세잎 클로버는 행복을 뜻한단다.

세잎은 네잎에서 한 잎이 결여된 것이 아니고

네잎은 세잎에서 한 잎이 추가된 것이 아니다

세잎과 네잎을 서로 연관시키는데서 슬픔이 발생한다.

세잎을 세잎으로 네잎을 네잎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때 비로소 세잎과 네잎의 소중함을 모두 놓치지 않을 수 있다.



2012년 5월 14일 월요일

이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착각은 심장에 겨냥된 활시위를 놓아버리는 시작이다.

아예 초장에 차단해야 한다.

미연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의 마음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일단 시작되면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도중에 스스로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력에 의해 타의에 의해 멈추어지지 전까지는 스스로 멈출 수 없다.

조금만 하다가 멈추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멈추어야 할 것이라면 시작하지도 말고 발을 담그지도 말라.

늪에서 살아남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예 늪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것이다.

애초부터 발을 담그지 말아야 살수 있다.

이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착각은 나의 심장을 향하여 겨냥된 활시위를 놓아버리는 시작이다.

일단 활시위가 놓아지고 나면 화살촉이 나의 심장을 뚫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애초부터 시작하질 말고 발을 담그지 말자.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은 결코 나에 대한 굴욕이 아니다

나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은
결코 나에 대한 굴욕이 아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고 깨달은 바가 있으면
뭔가를 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고 긴장을 하곤 한다.
그렇지만 약간이라도 그 상황을 모면하고 나면 그 다짐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마음이 지혜로와지고 대담해져서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해이지곤 한다.
그 결과, 하지 말아야겠다고 그토록 다짐했던 행동들을 허용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스스로의 착각에 빠져 그토록 지혜로와지고 대담해졌을 뿐 인 것이다.

변절하기 쉬운 것이 마음이다.
착각하기 쉬운 것이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신뢰해서는 안된다.

어떠한 뼈저린 다짐도 이 마음의 부패성을 막을 수 없다.
마음은 부패하는 것이려니 자인해야 한다.
따라서, 부패하는 마음들을 어떻게 멈출 것인지 항상 살펴야 한다.
마음이 지혜로와지고 대담해지는 것 같은 스스로의 착각에 빠질 때마다
이미 마음이 변절했으면 부패하고 있다고 스스로 멈춤을 걸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의 센서를 그대로 고장나고 만다.
또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마음의 센서가 부패하고 고장났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마음은 오늘도 부패할 것이고 내일도 변함없이 부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결코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그것이 부패의 속성을 가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갈 길이 먼 사람은 지나간 것들에 매여 멈춰 있지 않는다.

하나의 거절 통보는 아직 오지 않은 승낙 통보를 받기 위한 확인의 한 과정일 뿐이다.

절은 툭툭 털고나면 그 뿐, 갈 길이 멀다.

갈 길이 먼 사람은 지나간 것들에 매여 멈춰 있지 않는다.


부딪쳐라 대화해라. 진면목을 파악해라.

대화는 사진이나 글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얘기해준다.

사진이나 글은 얼마든지 편집이 가능하지만 대화는 좀처럼 편집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부딪쳐라 대화해라.

진면목을 파악해라.

이메일보내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다.



하나에 매이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면??

하나에 매이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반면, 하나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것에 매일 수 있다.
과연 어떤 선택이 진정한 자유로움일까??
나는 하나님께 매이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선택한다.
그대는??

2012년 5월 4일 금요일

왜 나를 사랑하세요?? 네가 하도 속을 썩여서..



▲ 소설가 공지영 씨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창립 3주년 토크콘서트'가 열린지 하루 만인 4월 29일, 똑같은 장소인 서울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소설가 공지영 씨를 다시 만났다. <지금여기> 토크콘서트에 이야기 손님으로 나섰던 그는, 이번에는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이하 장상협의회)가 주최하는 ‘2012년 수도자와 함께하는 갈릴래아 축제’에 강사로 초청됐다. 그는 ‘가톨릭과 나’라는 주제로 말하고자 한다며 운을 뗐다.

스스로 ‘공지영 마리아’라고 소개한 작가는 요즘 신앙심이 조금 생겼느냐고 묻는 어느 신부에게 “(내게) 신앙심이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신 하느님과 좀 친하게 지낸다”고 대답했다며 “저와 가장 친한 분은 하느님인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내가 하느님을 몰랐다면, 그리스도를 몰랐다면, 가톨릭에서 교육받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고,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가는 ‘십자가의 길’ 12처 기도문의 “혹시라도 영원히 주님을 떠날 불행이 저희에게 닥칠 양이면 차라리 지금 주님과 함께 죽는 행복을 내려주소서” 하는 구절을 인용했다. 그는 언젠가 십자가의 길 기도에 참여하며 “그 기도문에 진심으로 동의”한다고 느꼈다. “나는 넘어지면 일어날 수 없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갈 수도 없지만, 하느님 없이 살아가라고 하면 기꺼이 지금 죽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느님, 왜 나를 사랑하세요?”...
“그것은 네가 하도 속을 썩여서”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이 “신과의 싸움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했다.

저처럼 하느님께 온갖 버릇없는 말을 다 했던 사람도 드물 거예요. 한번은 기도하며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어요. “하느님, 왜 나를 사랑하세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는데 제 마음 속에서 이런 대답이 들려왔어요. “그것은 네가 하도 속을 썩여서다.” 그때는 의아했는데 나중에 제가 아이들을 키워보니까 저도 속 썩이는 아이에게 손이 많이 가고 늘 그 아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그 애를 제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작가는 개신교계 초등학교에 다니며 그리스도교 교리와 성경에 관해 배웠고, 중학교 1학년 때 “자연스럽게 집 앞의 성당으로” 이끌려 세례를 받고 견진성사도 받았다. 대학 2학년 때까지 포콜라레 운동에 참여하는 등 천주교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그는, 당시 여의도성당에서 일요일마다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영등포, 구로, 안양 등지의 “지금은 거의 사라진 끔찍한 빈민촌”을 찾아가 위문품을 전달하고, 노인들에게 봉사했던 일을 회상했다. 그때마다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여의도와 빈민촌의 참상을 비교하며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 경험이 대학 시절 그를 운동권으로 이끈 동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다시는 ‘내 탓’이라고 하지 않겠어.

그는 1980년대 스물두 살에 교회를 떠났다가 마흔 살에 돌아왔다. 성당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호경 빼고는 다 잊어버렸다. 그는 “하느님을 떠났던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너무 싫었다”고 말한다.
대학생 시절, 시위에 참여했다가 최루탄을 피해 명동성당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마침 꼭 ‘전도’하고 싶었던 친구 두 명도 함께였다. 피신을 겸해 미사에 참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미사를 주례한 사제는 성당 신축기금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고 투덜거리던 친구들은 담배를 피우러 나가버렸다. 작가는 너무 화가 나서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성당을 나서며 “이제 다시는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자신이 품었던 “아주 당돌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때 한창 ‘내탓이오 운동’이 벌어졌는데, 제가 속으로 생각했죠. 나는 이제 다시는 ‘내 탓’이라고 하지 않겠어. 내 탓이 뭐가 있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다는 말이야? 당신들 신부, 주교, 추기경, 우리 보고 ‘내 탓’이라 여기라 하지 말고, 당신들이 청와대, 국회에 가서 손가락을 똑바로 들고 정치인들 향해 ‘네 탓’이라고 말하면 나는 그 때 정말 ‘내 탓’이라고 말하겠다. 이런 아주 당돌한 마음을 품고 제가 성당을 나와서 18년 동안 방황을 했어요.

“마리아, 너는 여기 왜 왔어? 너는 왜 믿어?”

그는 그 18년이 ‘방황’만은 아니었고 “나름대로 재밌게 살았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돌아오게 됐다”며 동료 작가들과 어울려 드나들었던 수많은 점집과 온갖 종교를 소개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언젠가 독일에서 열린 성령세미나에 참가했을 때의 일화도 소개했다. 저녁에 신자들이 모여 성령세미나 중에 일어난 온갖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자, 작가는 '그런 기적은 내가 만나본 무당들이 벌이는 신기한 일과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말해 찬물을 끼얹었다. 그가 ‘바리사이 자매’라고 부르는 신앙심 깊은 여성 신자들이 듣다못해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럼 마리아, 너는 여기 왜 왔어? 너는 왜 믿어?”

작가는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저는 무당도 봤고,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도 봤지만, 저를 위해서 죽은 신은 예수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믿어요.”

그는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바리사이 자매'에게 던지고 나서, "내가 이렇게 좋은 말을 하다니 정말 성령을 받았구나" 생각했다며 이후에도 무심코 꺼냈던 그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교회는 저 흉측한 처형 광경을 매달아놓는가?

한편 공지영 작가는 교회가 갓 태어난 예수님이나 설교하시는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 십자가처럼 흉측한 처형 광경을 매달아놓고 신자들이 바라보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작가는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저 십자가의 길이 영생의 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저렇게 되라’는 말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작가가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 그는 소설 <도가니>를 쓰는데 참고하기 위해 보았던 그리스도교계 방송에서 ‘십자가’, ‘희생’, ‘보속’ 같은 말은 찾아볼 수 없고 ‘쳐 이기다’, ‘쳐부수다’, ‘복을 주시다’, ‘재산이 불어나다’ 같은 말만 난무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돈 내고 절하면 예외 없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들’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비교하기도 했다. 점집을 예로 들었지만 무속신앙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도를 선별해서 들어주기도 하고 안 들어주기도 하는 신이 진짜다.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절하고 돈 많이 내면 소원을 들어주는 신에 대한 관념이 많았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 신이 가짜 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잡신’들이 있다고 보는데, 그들은 우리 자신은 변하지 않은 채 그저 자기를 무조건 숭배하고 돈을 내기를 원하는 거예요. 저런 신을 믿다니 너무 자존심이 상했고, 웬만하면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하느님이 더 센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농담이고요. 물론 약간의 진실도 있습니다."

사형수들과 만나며...“죄가 많은 그곳에 은총이 충만하다”

그는 18년 만에 하느님을 다시 만난 데 이어 2004년 9월부터 사형수들을 만나기 시작하며 두 번째 변화를 겪었고 신앙이 얼개를 갖추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기 위해 구치소 측의 배려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이제는 상담봉사자가 되어 9년째 사형수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만난 사형수는 많은 경우 여러 사람을 죽인 흉악범인데다, 애절한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폭력배였거나 돈이나 증거인멸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

작가가 만난 사형수들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았고 거짓말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 사형수와의 만남을 다룬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출간 이후 7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작가는 삶의 모든 것이 부숴져버린 사형수가 봉사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새로 태어나 봉쇄수도원의 수도자 같은 놀라운 신앙을 갖게 되는 모습을 “엄청난 부활의 현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금도 교도소를 방문할 때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로마 5,20)하다는 성경 말씀이 비유만이 아니라고 느낀다. 이 ‘놀라운 부활’의 현장을 겪으며 그는 ‘사람이 사랑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의 사회 참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불행한 이웃 돌보기’

작가는 메모지에 적은 참가자들의 질문을 골라 대답하는데 30분 정도를 할애했다. 성소주일에 장상협의회가 주최한 행사인 만큼 천주교 수도생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도 두 차례나 나왔다. 그는 “다음에 쓸 소설이 수도자가 주인공인 소설”이라서 “수사님들 취재도 많이 했다”며 “한 번뿐인 인생을 멋지게 사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진리를 알고, 체험하고, 구현하겠다는 그 젊은 분들이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이웃이 울고 있는 것을 보면 음식이 맛있게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양심은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교회의 사회 참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불행한 이웃 돌보기”라고 표현했고, 이어 “추기경님이 하면 교회의 사회 참여이고 우리가 하면 교회의 사회 참여가 아닌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희생 노동자 분향소를 언급하며 “정말 못 떠나겠다. 그 얼굴이 너무 절망스럽고 또 죽게 생겼는데, 그래도 제가 가서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면 사람들이 화색이 돈다”고 말했다. 이어 글 쓰는 재능과 건강한 신체, 좋은 부모님 등 “제가 받은 게 너무 많다”며 “많이 받은 이유는 나눠 쓰라는 뜻인 것 같다”고 했다.



▲ 공지영 작가가 참가자들이 쪽지에 적어 낸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작가는 강의가 끝난 뒤에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행사장에 남았다. 갈릴래아 축제에 참여한 남자수도회의 홍보 부스가 차려진 카페에 앉아 수도자나 젊은이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그의 모습이 보였고, 장상협의회 회장 남상헌 신부가 주례한 미사 때는 뒷자리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수도자가 주인공이라는 다음 소설에서 공지영 작가가 이번 축제에서 만난 수도자, 젊은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녹여낼지 문득 궁금해진다.


기사원문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들...

보면 행복해지는 브이!!

국사봉에서

루커연말모임(2011)


행복한 미소를 지켜주고 싶은 글루소프트와 함께


공지영작가님과 함께(12.04.10.석촌호수)
공작가님은 예쁘시고 따뜻하신 분이시다.
천정배장관님 사모님과 함께 셋이서 대화하면서
각자의 자녀 교육에 대한 좋은 얘기들을 해주셔서
좋은 부모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함


천정배장관님사모님과 함께(12.04.10.석촌호수)
자녀에게 강요하지 말고 믿어주고 할 수 있도록 해주라고 하심
'좋은 부모는 아니었어요. 이제 좋은 할머니는 될 수 있을 것 같애요'
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음 자상하시고 따뜻하신 분
사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녀교육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됨


신은경권사님의 <홀리스피치>
힘들었을 때 신앙생활,  언어생활에 많이 도움됨

2012년 5월 3일 목요일

나의 말로 받아들인 오늘의 잠언 (잠언 3장)

3.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을려면 '인자'와' 진리'가 꼭 있어야 한다.

5. 내가 명철해봐야 보잘 것 없다.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마음을 다해서 하자.

6.고집대로 뻐티고 나가지 마라. 모든 상황과 경우에 하나님의 손길과 기획을 인정해야만 하나님이 나의 길을 지도하실 수 있다.

7.어떤 경우에도 악으로부터 떠나라(멀어져라. 피하라. 폭탄피하듯. 쓰나미로부터 멀어지듯,뱀으로부터 멀어지듯).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 마라.

9,10.풍성해지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그 분야의 시작을 하나님을 위해서 써라(일을 진행해라.할당해라.최우선적으로)

21.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항상 지켜라. 눈뜨면 보이는 것 처럼

22. 목에 장식품은 목걸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는 것이다.

23. 생애를 평안이 살아갈 수 있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있고, 걱정에 잠못이룰 일 없고 단잠을 잘 수 있으려면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항상 지켜라.

26.하나님을 의지하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주신다. 의지한다는 것은 그 분의 방침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35.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다.

36.지혜로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광은 그 사람에게 걸맞아 가치가 있지만, 미련한 사람에게 영예가 주어지는 것은 오히려 망신거리와 수치가 될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눈의 역할은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사물을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눈을 통해 보여질 뿐입니다.
마음에 없는 것은 아무리 봐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있더라도 없애버리고, 없더라도 만들어냅니다.
마음과 눈의 놀라운 마술이지요.

그런 까닭에 동일한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동일한 것을 보고도 다른 말을 하게 됩니다.

오프라인 만남에 대하여도 생각을 적어봅니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보면 글이나 인터넷 매체로 접하는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더구나 대화까지 해보면 만남과 대화의 마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온라인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도 직접 만나보면 따스함을 교감할 수 있고,
온라인에서 좋게만 느껴졌던 사람도 직접 만나보니 실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 대화했던 30분간의 시간을 통해
그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볼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미소짓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스스로 놀라게 하는
어떤 사람과의 만남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2012년 5월 1일 화요일

(신앙의 글들) 내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잃은 후에야 깨닫은 예배의 중요성

신앙의 트윗 모음들

당연 내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잃은 후에야 그동안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당연 놓아버렸던 새벽예배와 공예배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제는 그 어느 것에도 그 귀중한 시간을 바꾸거나 빼앗기지 않고 그 시간을 얻기 위해 범사에 더 집중하여 살아갈 것이다

시92:4,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전라도버전:아따 속시원해부러 요로코롬 일을행하셨다요)

넘버원(No.1)은 남과 비교해서 나온 결과이지만 온리 원(Only One)은 남과 비교할 수 없어 더욱 귀중하다는 사실도 가르쳐주자. -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50

하나님이 우리를 왜, 무슨 목적으로 지으셨는지를 잘 깨닫지 못하면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된다. 하나님이 찻잔으로 만들어 놓으신 자가 꽃병으로 만들어진 자를 비교하며 속을 끓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8

'오늘 또 야근? 도대체 사람 취급을 하는 거야 뭐야?(앗 이게 아니지.)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직장이 아직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감사합니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3

'저 동료는 왜 이렇게 나늘 못살게 구는 거지?(앗 이게 아니지.) 아..저런 사람과 한 집에 사는 사람도 있는데...그래도 나는 화사에서만 만나니 참 다행이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3

불평할 일이 없을 수 는 없겠지만 그 불평을 감사로 바꾸어보도록 하자. 무의식중에 불평이 나왔다면 얼른 거기에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면서 반전의 말을 덧붙여 감사의 말로 바꾸어 보자-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3

똑같은 상황에서 불평하는 사람과 오히려 감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불평이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당신에게 달려있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2

하루 종일 많은 불평을 쏟아내보았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출근길은 남마다 막히고 부장님은 늘 그대로 그 자리에서 나를 괴롭히고.. 나의 불평이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42

홍해를 갈라주시고,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시고, 광야에 메추라기와 만나로 주린 배를 채워주시고, 돌에서 물이 솟아나게 해주신 여호와께서도 참다못해 선언을 하시기에 이르렀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신은경의<홀리스피치>

또 한가지, 우리가 귀 기울여할 할 하나님의 말씀은 섭리적 역사를 통하여도 세밀하게 들려온다. 존 오웬은 섭리적인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우리의 영의 생각이 개발된다고 주장한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36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한 치도 틀림이 없으며 모든 말씀이 진리이므로, 달콤한 말뿐 아니라 주님의 징계의 말씀, 경책까지도 겸허히 들어야 할 것이다. -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35

제1일:말하기의 기본은 듣기다. 제2일:공감하면 상대가 들린다. 제3일:듣기의 기본은 하나님의 말씀듣기다. - 신은경의 <홀리 스피치>에서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언25:28)

환난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잠언25:19)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잠언25:16)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잠언25:15)

근처교회들을 마다하고 약간 먼곳을 다니시는 약사님 한분은 약국을 들른 부목사님이 '주보한장'을 주고 가셨는데 한달후 이사와서 교회를 찾는중에 택시에게 길안내부탁하고 자신의 차로 따라 처음 찾아갔단다. 7년전일이며 돌아보니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단다.

첫째,잠시 멈추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 '지금 저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헤아려본다. 둘째,저 사람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까' 생각해본다. 셋째,성령님의 도움으로 '상대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한다.- 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28

공감이나 배려는 나의 마음이 넉넉할때 가능하다. 나 자신이 고단하고 메마르면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고 오해하기 쉽다. 나 자신이 먼저 자존감을 갖고 큰 그릇이 되면 상대를 넉넉히 수용할 수 있다.-신은경의 <홀리 스피치>P28

너는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언24:29)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잠언24:26)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언24:19,20)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4:13,14)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24:5,6)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잠언24:1)